[VON칼럼] 죽음은 왜 권력에 이용되나_ 조지 플로이드의 생애와 죽음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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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영진 재미(在美) 목사

46세 흑인 중년 조지 플로이드의 장례식이 오늘 그가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었던 휴스턴에서 거행되었다. 이로써 그의 죽음으로 야기된 2 주간의 시위와 폭동은 사그러져갈 때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아무도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예단할 수 없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한 사람의 흑인의 죽음으로 끝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올 11월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재발화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하다.

조지 플로이드는 노스 캐롤라이나 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텍사스주의 휴스턴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서 이후 휴스턴에서 살았다. 거기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청장년 생활을 영위했기 때문에 조지 플로이드는 휴스턴을 고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장례는 휴스턴에서 거행되었고 시신도 거기에 안장되었다.

여기서 잠시 조지 플로이드의 삶의 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밝혀진 사실에 근거하여 그의 삶을 조명하고자 한다.

그는 여느 흑인들의 가정과 같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고 불안정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흑인 청소년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도 또래 흑인 아이들과 어울려서 동네에서 운동을 하면서 때로는 또래끼리 어울려 금지된 장난을 하면서 자라났다.

12살 때 벌써 그의 키는 6피트, 그러니까 180 cm나 되었다. 그후 키가 더 자라서 6피트 6인치가 되는, 2m 큰 키에 우람한 체격을 갖춘 흑인 청년이었다. 체구만 보아도 상대방이 기가 죽을 법한 거구였다.

미국에서 흑인 청소년의 꿈이라면 일반적으로 노래나 랩을 잘하던지 춤을 잘 추던지 하여 연예인으로 진출하는 것이 제일의 목표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타고난 체력으로 운동선수로 성공하는 것이다. 조지는 타고난 좋은 체격조건으로 중학교 때부터 농구 선수와 풋볼(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하였다.

그는 휴스턴에서도 흑인 슬럼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밑바닥 생활을 이미 청소년 때에 익히며 살아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가 바라던 프로 운동선수로서의 꿈은 사라져 버렸고 번듯한 직장없이 잡일을 하면서 근근히 살아가는 일반적인 흑인 청년이 되었다.

흑인 밀집 슬럼에서 조지처럼 체격이 큰 청년을 가만두고 볼 갱단이 있겠는가? 조지는 이들과 어울리면서 일찍부터 범죄에 발을 디뎠다. 흑인 슬럼에서 청소년이 아주 흔히 빠져드는 몇 번의 절도와 몇 번의 마약사범(미국에서는 마약을 하는 것은 그다지 죄가 아니고, 마약을 파는 마약판매상만 주로 범죄자로 취급한다.)으로 전과가 쌓여갔다.

급기야 5인조 강도범이 되어 한 가정에 침투하여 온 집안을 뒤져서 강도짓을 하는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 집의 안주인인 임신부의 배에 총을 들이대는 끔찍한 범죄적 행위까지 하게 된다. 5인조 강도범들은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조지는 5년간 감옥생활을 하게 된다. 이 사건은 그를 더욱 옭아매어 중범 전과자로서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들어서지 못하게 했다.

그러다가 그는 한 흑인 목사님을 만나게 된다. 조지는 그의 도움으로 거듭나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교회를 성장시키는 데 기여하게 된다. 한 8년 정도 한국 교회의 구역장격인 지역장으로서 열심히 교회를 위해 봉사했다.

아마 이 때가 조지 플로이드의 생애에 있어 가장 행복하고 보람있는 시기였을 것이다. 목사님은 조지를 휴스턴에 두면 예전에 어울리던 불량한 친구들이나 갱들에게 다시 포섭될 것을 염려해서 멀리 북쪽인 미네소타주의 미니아폴리스로 보냈다.

조지의 전과가 9범이라는 말도 있고, 11범이라는 말도 있다. 어쨌든 조지는 전과자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상태가 되어 미니아폴리스로 오게 되었다.

미니아폴리스에서 조지는 커다란 체격이 필요한 직업을 가지게 된다. 바운써(Bouncer)라고 불리는 규모가 큰 바(Bar)나 나이트클럽에서 근무하는 도어맨(한국에서는 ‘기도’라고 부르는)일을 하게 된다.

조지에게 가혹행위를 해서 죽음에 이르게 한 경찰관 쇼빈도 같은 직장에서 파트타임 안전요원(Security Officer: 미국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많다.)으로 일했다고 한다. 서로 알았는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함께 같은 장소에서 일했던 기록은 있다. 그러다 그 나이트클럽이 문을 닫게 되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조지가 경찰관 쇼빈에게 목을 짓눌려 죽음에 이른 날의 사건은 이렇다. 조지는 다른 흑인과 함께 2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갖고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장소 앞에 있는 마트에 가서 담배를 사게 된다.

마트 주인이 위조지폐임을 알아보고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고 경찰관들이 출동하여 근처에 있던 조지를 체포했다. 처음에 반항하며 경찰차에 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 뒤로 수갑이 채이게 되고 다시 경찰차에 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바닥에 들어눕게 되었다.

이 때 쇼빈 경찰관이 미국 경찰이 범인 제압할 때 사용하는 방법중 하나인 무릎으로 목을 누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 쇼빈은 출동한 4명의 경찰관 중 최고 고참이었고, 체포되는 과정에서 큰 덩치로 저항한 조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인지 직접 무릎으로 누른 것 같다. 그러나 이 때 조지의 숨쉴 수가 없다는 호소도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결국 조지는 죽고 경찰관 쇼빈은 2급 살해범으로 기소되었다.

이후 일어난 차별 반대 시위와 이를 틈탄 폭도들의 폭동은 뉴스를 통하여 이미 아는 사실들이다. 미국에서 격렬한 시위에는 언제나 가게들을 털고 불을 지르는 폭도들이 따르게 마련이다. 특히 백인 경찰관이 과잉진압으로 인하여 흑인 범죄자를 죽인 사건이라 더욱 폭발력이 있었다.

바로 전에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백인 여자가 흑인 남성을 허위 신고하는 사건과 조지아 주에서 조깅하고 있던 흑인 청년을 두 명의 백인 부자가 의도적으로 살해한 사건이 겹쳐 흑인사회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는데 백인 경찰관에 의한 조지의 죽음은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격이 되었다.

조지 플로이드는 영웅이 될 요건들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다수의 전과를 가지고 있는 위조지폐 사용범일 뿐이었다. 위폐범으로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지면 길게는 몇 년을 감옥생활하고 나와서(미국에서는 위조지폐에 대한 형벌이 크다.) 소위 별을 하나 더 달고 살아가게 될 평범한 흑인일 뿐이었다.

그런데 경찰관에게 죽임을 당한 조지는 영웅이 되었다. 공권력을 대표하는 경찰관이 흑인 용의자를 재판도 없이 살해한 것은 백번만번 잘못한 일이다. 백주에 사람의 목을 짓눌러 죽음에 이르게 한단 말인가? 천인공노할 일이라는 말밖에는 다른 표현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왜 조지 플로이드가 이렇게 영웅화되어 거리마다 그의 사진과 그림이 나붙게 되었을까? 왜 전세계적으로 유명인물이 되었을까? 왜 강도전력까지 있는 전과범에 불과한 그가 미니아폴리스에서,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그리고 휴스턴에서 황금색 관에 누워서 추모식과 장례식이 전국으로 중계되는 영웅이 되었을까?

단순히 백인 경찰관에 죽임을 당해서일까? 그렇다면 그는 순교자일까? 아니면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이 조지 플로이드를 이용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려고 그랬을까? 많은 의문을 남기고 조지 플로이드의 장례식은 거행되었다.

흑인사회의 유명인사들이 그를 기렸다. 민주당의 유력정치인들은 그를 위하여 무릎을 꿇기까지 하였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조 바이든은 그를 추모하는 추모사를 영상으로 내보냈다. 마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했을 때처럼 국가적 영웅화된 행사들이 줄을 이어 열렸다.

어떤 사람은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 때보다 더 시위가 크고 약탈 피해도 더 크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애꿎은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사업장이 털리고, 건물이 불에 타고, 자영업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 사업체가 약탈당하고 불에 탈까봐 불안에 떨었다.

과연 무엇 때문일까? 조지 플로이드가 영웅화되는 뒷면에 힘들게 살아가며 애써 모아 만들어 놓은 사업체가 약탈당하고 불에 타버린 사람들의 슬픔이 있다. 어찌 이 슬픔은 언급되지도 주목되지도 않을까? 법을 지키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미국의 소시민들은 정치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까?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그 이후에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사뭇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희생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이루려는 또 한 무리의 사악한 집단이 있지는 않을까? 의구심이 든다.

서민을 위한다면서 서민들을 짓밟고 서서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이루려는 무리들의 섬뜩한 냉소가 눈에 밟힌다. 서민들의 목이 구둣발에 밟히고 있고 숨을 쉬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들은 모르는 듯하다. 조지 플로이드의 생명이 중요하다. 약탈 당하는 미국 서민들의 삶도 또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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