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N칼럼] IKEA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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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머리가 얼얼하여 이틀 전, 2019년 12월 5일에 일어난 일의 정확한 쟁점과 교훈을 캐치하기가 어렵다. 다만 IKEA 고양점 지하 2층에 주차 후 들어가는 자동문이 열리자 마자 미끄러져 꽈당 넘어져 머리를 찧었다는 것이다.

고객센터를 찾아 지하 2층 메인 게이트에 상당량의 토마토 스파게티 소스가 쏟아져 있고 자동문이 열린 후 첫발이라 무방비로 미끄러졌다고 했더니 담당 직원이 우선 귀찮은 일을 당했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경황 없어 정확히 어느 정도 다쳤는지 가늠이 안 되어 그 담당직원에게 당장 CCTV를 찾아서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을 체크해 보고 말하자고 했는데 현장을 다녀 온다든지 등등의 일로 분주하게 20~30분을 기다리게 하더니 돌아와서는 “깽값” 받으러 온 사람 취급이었다.

IKEA))
“세탁비 언급을 하신 것같은데, 제가 알아본 후 먼저 이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는 소스가 엎지러진 시간과 고객님이 다친 시간 차가 짧으면 세탁비 포함 어떤 배상도 해 드릴 수 없습니다.”

필자))
“아니 지금 어느 정도의 사고인지 확인해 보고 얘기하시죠. 머리를 찧는 뇌진탕을 당했다구요.”

황당한 상황에서 같이 갔던 회사 직원과 얘기를 나누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북유럽에서 온 이 회사의 사장과 대화를 좀 해봐야 겠어. 미국에서 있었던 바나나 껍질 케이스를 준용하고 있나본데, 좀 신기하기도 해서. 어떤 과정에서 나온 수칙인지 궁금하네. 보험도 있을텐데 왜 겁을 내지?”

대형 마트에서 일어나는 안전사고 중 이런 유형의 사고를 ‘미끄러져 넘어진 사고’(slip-and-fall) 케이스라고 한다. 미국같은 법치 선진국에서는 아주 흔한 케이스다. 그 중 바나나 껍질 관련된 두 종류의 케이스가 널리 알려져 있다.

하나는 오래되어 누렇게 된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다친 경우고 하나는 아직 푸른끼가 남아있는 싱싱한 바나나 껍질의 경우다. 오래된 바나나는 벌써 오래전에 고객이 먹고 버린 껍질을 제때 안 치운 경우니 무조건 마트 책임이고, 싱싱한 껍질의 경우는 마트도 일일이 따라 다니며 치울 시간이 없으니 합리적인 시간이 허용돼야 옳고 전적으로 마트 책임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판결이다.

IKEA 담당직원이 말하는 시간차는 이런 의미일 것같았다.

사실 IKEA의 스파게티 소스의 경우는 수퍼마켓 발밑에 걸리는 바나나껍질 정도와 비교 안 되게 위험천만이라 고객센터를 찾아올라 간 것이었다. 메인 게이트라서 10분 안에도 수십 명은 족히 드나드는 곳이고, 자동문 열리고 첫발이라 대비할 틈도 없는 곳이고, 상당량의 소스라 바나나 껍질 정도의 위험물질이 아니어서 “당신들 왜 이렇게 부주의하죠” 따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고 전후 알아보지도 않고 배상 불가 운운하는 IKEA 담당 직원의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응대를 보며 우리 사회가 시간을 거꾸로 가기 시작한 건 알았지만 IKEA같은 글로벌 기업조차 한국의 이 역주행에 함께 하게 됐나 씁쓸했다.

2009년에 대전 한 수퍼마켓에서 있었던 바나나 껍질 안전사고에 대해 우리 법원은 70프로 마트, 30프로 고객 책임을 판시한 적이 있다. 우리 나라도 이제 보통 사람들의 법적 인식이 높아져서 미국에서 흔한 과실(negligence) 책임 소송과 같은 것이 많아지고 있다. 정은 좀 없어 보여도 길게 보아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10년 후, 글로벌 기업 IKEA 대문을 지나가면서 내가 겪은 사고는 요즘 우리 사회 법치 후퇴의 한 토막같아 씁쓸하다. 우연일 뿐이겠지만.

지금 내가 뭔가 크게 잘못 생각 중인가요? 머리를 바닥에 찧어 판단능력 저하에 따른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 인권, 소비자권리 선진국에서 온 스웨덴 사람 프레드리크 요한손(Fredrik Johansson) IKEA 사장을 만나 이 상황에 대한 합리적인 해명을 들어보고 싶다고 사흘째 생각중이다.

에이구. 어디 다친 데 없어요? 괜찮으세요? 이런 말도 “깽값” 무서워 못하는 사회가 된 건가? IKEA조차. 한국에서 사는 것이 날로 팍팍해진다.

/ 김미영 법치와자유민주주의연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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