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N칼럼] 태극기와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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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N칼럼] 태극기와 촛불

서울대 조국 반대 집회에 일부러 가봤다. 태극기와 촛불의 공존 가능성을 내심 확인하고 싶지 않았을까?

서울대 총학은 “우리 촛불이야. 태극기는 나가줘” 이런 뉘앙스를 시종일관 풍겼다.

누가 태극기 들고 나타날까봐 전전긍긍해 “우리는 우경화되지 않았다”며 자신들의 조국 반대의 반사이익을 태극기가 가져갈까봐 노심초사하는 듯 보였다.

서울대 출신이 아니면 메인에 앉을 수도 없었다. 한 구석에서는 집회 중에도 학생증 검사중이었다.

촛불 언론들 무서워서 그러는 것이겠지. 서울대생 아닌 사람들이 숫자 불렸네. 듣기 싫어서.

그러니 시위가 전체주의적이다. 사회자가 시키는 대로만 할 수밖에. 이렇게 조용한 시위는 처음 봤다. 경건하기까지 했다. 진풍경이다.

이제부터 순전히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고 싶다. 나는 처음부터 서울대가 싫었다.

30년 전 서울대에 내 눈에는 공산주의자 90프로, 소수의 네비게이토와 더 소수의 “우리끼리 귀족”, 그리고 외톨이들이 보였다.

우리 과에서 대학, 대학원에 다닐 동안 세 사람이 자살로 죽어나가는 것을 봤다.

입학하기 전에 자살한 한 선배는 회색인의 죽음으로 시대의 죽음을 보여줬다고 “열사”라고 불렸다.

과 학생회실 누구나 메모를 남기는 공책은 “막써라 막써. Marxera Marxer”라는 이름이었다. 막 쓰고 막 퍼 먹고 막 소리질러도 모두 칼 마르크스 안에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나는 칼 마르크스 정통. 난 칼 마르크스를 주체적으로 지양 극복. 이런 식의 말싸움으로 학생 권력 학생 정치판이 벌어졌다.

써클은 과와 비교 안 되는 수준이었다. 숨기지 않는 김일성 숭배사상에 물든 사람들은 처음 봤다.

인사하고 지내던 선배는 나중에 주사파 지하정당 검거때 뉴스에 나타났다. 학생회관 근처에서 자주 눈에 띄었던 이정희씨는 나중에 통합진보당 대표까지 됐다.

30년 전에 나는 자칭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외톨이도 아니고, 우리끼리 귀족도 아니었다.

그때도 나는 공산주의자들과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진짜 이념에 목숨 거는 진성 공산주의자도 있었고, 머리로만 말로만 공산주의자인 가짜들은 훨씬 많았다. 대개 속물이었다.

그때 그들과 나는 지금도 불화하고 있다. 속물인 것까지 탓할 일은 없다. 나 자신이니. 그러나 공산주의 속물은 싫다. 위선자들이니까. 진짜 공산주의자들은 더 싫다.

나는 언제나 공산주의자들과 싸우고 있다. 30년 만에 서울대에 가 보니 설마 아직 공산주의자들이 있을까마는 공산주의 패러다임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었다.

서울대에서 공산주의 패러다임에 소리를 내어 저항하는 사람들은 트루스포럼 정도 있을까? 그들은 극우라는 욕을 집어 먹으며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대학을 택한다면 서울대는 가지 않을 것같다. 아버지가 너무 크게 망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국립대학이 아니면 학교를 못 다닐 만큼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으면 아마 그때도 서울대를 가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화를 공산주의를 갖고 하면 그게 민주화인가? 독재화이고 인간노예화일 뿐! 자신들이 공산주의에 빠져 망둥이처럼 뛰어다닌 걸 다 알면서 아직도 민주화 운동가였다고 자랑하는 한 세대에 대한 구역질을 참는 게 요즘 제일 어렵다.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이 날뛰는 것에 불편한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든 게 탄핵 촛불 아니었나?

태극기와 촛불의 싸움은 결국 반공과 친공 싸움 아닌가?

나는 반공이다. 나의 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사태 인식에 진심으로 반론을 제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서울대 총학의 학생증 검사에 나는 임하지 않았다. 잘 쓰지 않는 같잖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기껏 논문저자니 장학금이니에 분노하는 서울대 총학의 이공계형 데모도 밥그릇 챙기기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서울대 총학에 한 마디 남긴다.

자유한국당? 거기도 촛불과 태극기가 싸우는 중!

그나마 트루스포럼이 있어 기쁘다. 희망은 작은 불빛으로 시작된다.

/ 김미영 전환기정의연구원장, NPK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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