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N에세이] 국제사회는 어떻게 북한 인권 문제에 접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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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N에세이] 국제사회는 어떻게 북한 인권 문제에 접근하나

/ 김미영 전환기정의연구원장, 전 한동대 교수

<주 : 이 글은 기독법률가들이 만든 NGO 크레도의 기관지 크레도(CREDO)2019년 4월호에 실린 글을 편집 전 버전으로 수록한 것입니다.>

지난 호에 “우리가 왜 주체사상파와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썼다. 어떤 프레임에 갇히면 정말 중요한 진실을 볼 수 없게 될 수 있다. 주체사상파의 시각은 “우리 민족”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어 북한 정권이 70년이 넘도록 북쪽이든 남쪽이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우리 민족”을 밀어 넣었는데도 마치 북한 정권이 민족의 존엄과 복리를 대변하는 다른 한쪽이라는 망상이 널리 유포되어 있다.

북한은 김일성 사후 공식적으로 ‘김일성민족’을 표방했다. 연호도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원년으로 표기한다. 모든 사물을 보는 시각이 김일성주의에 갇혀 있어 민족사조차 김일성 가족사로 바꿔 놓았는데도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이 사이비 민족 개념을 반성 없이 수용하는 경향까지 있다. 따라서 이번 호에서는 북한 문제에 대해 바깥에서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북한 인권 문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정보 수집이 어려운 곳이라는 데 있다. 그래서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의 증언이 가장 중요한 정보의 원천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1990년대 식량난 이후 대량의 탈북자가 발생하면서 정보 수집의 모집단이 매우 커진 것이다.

말하자면 북한 인권 문제는 체제의 폐쇄성으로 인해 심각성에 비해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문제였다가 탈북자가 급증한 시기인 1997년 8월 21일 제네바에서 개최된 유엔인권소위원회 제 49차 회의에서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되면서 비로소 장이 열렸다.

필자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해 2000년 봄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당시 위원회)에 NGO 활동가 자격으로 참석했다. 벌써 20년이 다 돼 가지만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면 국제 사회의 주 관심사는 중국의 인권 문제였다. 특히 티벳 등 소수민족 인권 문제였다. 미국 배우 리처드 기어가 티벳을 대변해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는 시절이었고, 대인지뢰 문제 등도 부각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북한인권’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다는 표정을 유엔 언저리에서 심심찮게 목격하곤 했다.

당시 제네바에 근무하는 북한 외교관들은 “인권은 모르겠고 김일성 김정일, 소위 상부에 관해서만 언급하지 말아다오.” 식으로 나왔는데 북한 요원들의 외교적 임무가 “김일성 김정일 보위”라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북한 인권이란 전대미답의 불모지와 같았다.

그러다가 2004년의 북한인권특별보고관 (the Special Rapporteur on the Human Rights) 임명은 북한 인권 문제 국제적 확산에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2004년 개최된 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는 북한인권문제를 전담하여 위원회와 총회에 보고할 수 있도록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임명했다. 임기 1년의 특별보고관은 6년까지 임기를 연장할 수 있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세 명의 보고관이 임명되었다. 초대 특별보고관 비팃 문타폰(Vitit Mintarbhorn)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마르주키 다루스만(Marzuki Darusman)이 2016년까지 6년씩 연장하여 임수를 완수했고, 2016년에 임명된 오헤아 킨타나(Ojea Quintana) 특별보고관이 현재 활발히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18년 9월 킨타나 보고관은 뉴욕의 유엔총회에 참석하여 한반도 평화무드 속에서도 개선되지 않는 북한인권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함으로써 비핵화와는 다른 차원의 접근법으로서 ‘인권을 통한 대북 접근’의 중요성을 환기시킨 바 있다. 지금도 특별보고관의 활동은 국제 기구 차원의 대북 인권 활동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별 특별보고관이라는 것은 특정국가 및 지역의 인권 상황 자료를 객관적 기준에 따라 작성하고 축적하여 국제사회에 보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특정 국가의 인권 상황 및 특정 주제가 공론화되고 특정 정부 및 관련 이해관계자로 하여금 국제사회의 인권 준수 등 요구를 지키도록 한다.

문타폰, 다루스만 등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활동은 다른 특별보고관과 비교해서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초대 특별보고관 문타폰은 2007년 유엔총회와 유엔인권이사회에 보내는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인권 상황을 생존권, 자유권, 자유권, 이동과 망명, 취약집단의 권리, 국가 당국의 책임 다섯 부분으로 구체적으로 구분했고, 2008년 보고서에서는 북한의 개발이 인권 개선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규범적 접근을 시도한 것은 북한 당국으로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인권’이라는 압박을 어느 정도는 신경쓰기 시작했다는 증언도 탈북자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타폰 보고관의 2010년 보고서에서 “국제사회와 국가들이 북한의 폭력 및 위반을 처벌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며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 제소의 필요성으로 연결한 것은 또 새로운 신기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제 2대 마르주키 다루스만 특별보고관은 김정은의 ICC 제소 관련된 작업을 훨씬 치밀하게 진행했다. 2013년 3월 21일 제22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는 47개 이사국들이 표결 없는 합의를 통해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을 통해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중대하고 조직적이며 광범위한’(grave, systemic, and widespread) 인권침해, 즉 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대해 유엔 차원에서 면밀조사 및 기록을 위한 조사위원회가 신설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DPRK, 이하 “COI”) 설치가 결정된 당시 필자는 또 한 차례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에 참석했다. 2000년과 2013년 분위기는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우선 북한 인권 문제에 함께 하는 비정부기구가 국내외에서 많이 늘어났고, 다루스만 북한인권보고관의 적극성이 눈에 띌 정도였다. 듣기로 북한인권 보고서를 작성한 다루스만 보고관을 도운 집필진들이 충격과 아픔 속에서 눈물로 작업을 진행했다고 했다.

북한 인권 문제의 특징은 일부러 다가가고 들춰보고 노력하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대북 정책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진지하게 살피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대개 알고 있지만 그 구체적 참상에 대해서는 깊이 이해하는 바가 없는 사람들이 북한에 관련된 각종 정책을 마련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 진전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사실도 지적해 둘 만하다.

북한 COI는 2013년 호주 법률가 마이클 커비 대표 체제로 본격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 조사에 들어갔다. COI의 설립 목적은 국제인권법상 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의 요소들을 적시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것으로서 북한이 국제형사재판소의 로마조약 가입국이 아니지만 반인도범죄가 규명되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통해 범법자를 ICC에 회부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심각한 절차였다.

COI의 활동이란 북한 인권 문제라는 산적한 구체적 사실들을 ‘반인도범죄’라는 거대한 옷장에 차곡차곡 분류해 넣는 작업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잘 정리된 옷장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증거자료로 보내어 법범자 김정은을 처벌해 달라고 청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COI는 1년 남짓한 시간에 엄청난 열정을 기울여 주목할 만한 성과를 제출했다. 유엔북한인권간략보고서(A/HRC/25/CRP.1)와 상세보고서(A/HRC/25/63)가 작성되었는데, 특히 상세보고서는 37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한국어 번역본도 686쪽에 달하는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적 인종적 지역적 틀을 넘어서서 이 작업에 참여한 국제 기구 요원들의 열정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커비 위원장은 여타의 나라에 관한 조사와는 다른 차원의 성과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일부로 다가가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한 번 발을 들이면 빼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의 영혼을 고통에 몰아넣어 해결의 열정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참혹한 상황이 있는 것이다.

북한 COI 활동 1년 만에 제출된 이 보고서는 결국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반인도범죄에 책임이 있는 범법자로 규정했고, 이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다루어 줄 것을 건의했다. 실제로 안보리가 이 문제를 의제 삼아 다루기도 했다.

COI가 유엔총회와 안보리에 가져간 북한 인권유린이라는 거대한 옷장은 기본적으로 9개 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식량권의 침해, (2) 정치범수용소 관련 모든 인권 침해사항, (3) 고문 및 비인간적 대우, (4) 자의적 체포 및 구금, (5) 각종 차별, 특히 기본적 인권과 자유에 대한 조직적인 박탈 및 침해 속에 이루어진 차별, (6) 표현의 자유, (7) 생명권 침해, (8) 이동의 자유 침해, (9) 외국인 납치를 포함한 강제실종 등이다.

국제 기구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인권 문제를 평시에 일어나는 반인도범죄의 틀 속에 넣어서 보고 있고, 엄청난 규모의 인권유린은 반인도범죄의 모든 구성요소를 충족시키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북한의 인권 문제는 이러한 국제인권법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국제인도법을 포함한 국제형사법의 광범위한 관심을 요구한다.

북한이 1950년에 일으킨 전면적인 전쟁, 곧 내전이면서 국제전이기도 했던 한국전쟁(6.25)도 국제인도법상 미제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으로 종전 선언의 요구가 환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북한은 전쟁을 도발했을 뿐 아니라 휴전상태에 있었던 지난 66년 동안 40만에서 50만 건에 이르는 휴전협정 위반 사례를 기록했다. 천안함 도발과 같은 대형 인명 희생 사건도 포함돼 있다. 전쟁을 일으킨 책임, 즉 평화에 반한 죄(Crime against Peace), 또는 침략범죄(Aggression)와 전쟁중에 있었던 민간인 납치와 피살을 포함한 각종 전쟁범죄(War crimes)에 대해서도 해결이 요구된다. 유엔의 북한 COI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만 해 두는 수준으로 최소한만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2000년대 들어 국제 사회가 본격적으로 북한의 인권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 인권 문제의 진전은 미미하고, 제대로 해결이 되었다고 할 만한 것이 없는 상황이다.

북한 비핵화 국제정치 라운드가 본격화되면서 인권은 한층 부차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북한 인권 문제는 국제 정치의 종속 개념처럼 다루어지지만 북한에 관한 한 인권 문제야 말로 가장 본질적인 문제라고 보여진다. 북한의 인권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그런 조건이 형성된다면, 핵문제는 오히려 쉽게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 핵은 국제사회를 향한 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북한 주민들을 겁주고 협박하는 용도로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사회의 관심이 지속되고 있는 점이다. 북한 COI 임무가 1차 완수된 후에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Office of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는 한국에 북한 인권에 관한 사실적 조사를 위한 사무소(UN Human Rights Office-Seoul, 서울유엔인권사무소)를 열고 임무를 계속 이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서울 사무소는 탈북자, 납북자, 이산가족 문제 등 한국을 현장으로 하는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그 하나로 2016년 한반도내 비자발적 가족분리 문제의 시급성을 다룬 보고서(Torn Apart)를 내기도 했다.

요컨대 북한의 인권 문제에 관한 한 유엔 등 국제 기구의 역할은 지대했고 여전히 중요하다. 그 이유는 우연만은 아닐 것으로 본다. 유엔이 창설된 이래 유엔군과 유엔군사령부 형태로 전쟁을 수행한 처음이자 마지막 전쟁은 한국전쟁(6.25)이다. 6.25는 정전, 또는 휴전 형태로 종결되었고 1953년 7월 27일의 정전협정 이후 북한은 냉전을 감당하면서 주민들을 전시보다 더 심각한 인권상황에 몰아넣었다. 북한은 모든 인권 유린을 정당화하는 신성화된 독재자를 정점으로 하여 인권 및 핵 등 모든 종류의 문제를 일으켰다. 이 문제는 한국,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 모두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북한의 문제는 세계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북한 문제의 해결하는 실마리는 다시 1948년 세계인권선언에서부터 풀어야 할 것으로 제안하고 싶다. “인류 가족 모든 구성원의 타고난 존엄성과 평등하고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전 세계의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기초”라고 세계인권선언은 첫 구절에서 말한다. 요즘 ‘평화’ ‘평화’ 하지만 북한주민의 존엄성 없이 평화를 말하는 것은 기만이 될 수밖에 없다.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인류의 양심을 짓밟는 야만적 행위로 귀착”되었다고 다음 구절에서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북한의 현실이 아닐까?

세계인권선언은 “인류가 언론의 자유와 신념의 자유를 누리고 공포와 궁핍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은 보통 사람의 지고한 열망으로 천명되었고, 인간이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란에 호소하도록 강요받지 않으려면, 인권이 법에 의한 통치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상황에 대해 세계인의 시선으로 본다는 것은 결국 유엔총회가 1948년 12월 10일 선포했던 세계인권선언이 인권 사각지대 북한에서 천명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세계의 관심은 여전히 긴요한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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