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N칼럼] 헌재는 낙태죄 합헌 유지해야_ “인간생명은 존엄하다” 선언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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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2012년 위헌결정을 한 이래 7년 만에 다시 ‘낙태죄’ 위헌 여부를 선고할 예정이다.

2012년 당시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사익보다는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을 더 우선시하여 낙태죄를 존속시켰다. 그러나 지금의 헌법재판소 구성원의 진보적 성향을 볼 때 이번에는 낙태죄가 위헌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낙태 문제의 논란의 핵심은 낙태를 온전히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자의적인 판단에 맡겨 두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나 사회의 차원에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남겨두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의 존중이라는 우리 헌법의 정신에 입각해 볼 때 낙태죄는 앞으로도 계속 존치되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1973년 Roe v. Wade 판결을 통해 태아가 자연적으로든 의학의 힘을 의지해서든 엄마의 자궁 밖에서 살 수 있는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전 시기에 대한 낙태를 합법화했다. 그 이후로 미국 사회는 애초에 낙태를 합법화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던 ‘엄마의 건강 보호’라는 전제조건이 점점 약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예를 들어 2000년, Stenberg v. Carhart 사건에서는 네브라스카 주의 ‘부분 출산 낙태 (Partial- Birth Abortion) 금지법’이 위헌이라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부분 출산 낙태란 D&X (Dilation and Extraction) 시술법이라고 하는데 태아를 자궁 밖으로 반쯤 끄집어내어서 두개골부터 부수고 그 안에 있는 뇌를 제거하는 방식의 낙태시술법이라고 한다. 주로 임신 5-6개월(20-24주 사이) 사이에 시술되는 것이라고 하니 아이가 상당히 자랐을 때 사용하는 낙태방법이다.

당시 연방 대법원은 이런 부분 출산 낙태 시술을 금지했던 네브라스카 주의 법 조문이 모호하여 D&X 낙태 시술뿐만 아니라 다른 낙태시술 방법까지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이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부당한 부담을 지우는 일이라고 해서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후에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진보적이라고 하는 미국에서조차 미국의회의 차원에서 또는 다양한 다른 소송전을 통해 프로 초이스(Pro-Choice)라고 하는 낙태 찬성론자와 프로 라이프(Pro-Life)라고 하는 낙태 반대론자들의 싸움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공화당의 몇몇 의원들 주도로 ‘낙태 생존 아기 보호법 (Abortion Survival Protection Act)’를 통과시키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이 법은 낙태 시술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산 채로 태어난 아기에 대해서는 그 생명을 지켜주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법안을 반대하는 미국 민주당에서는 이런 아이들 역시 엄마가 원하지 않던 아이였으니 죽도록 내 버려두자는 것이다. 민주당의 논리대로라면 낙태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아기는 애당초 엄마의 선택에도 계획에도 없던 아이였으니 죽여도 된다는 것이다.

쟁점은 이 아이가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부여되고 생명권이 발효되어 헌법의 보호 아래 들어 올 수 있는 시기는 언제부터인가 하는 것이다. 태어난 후 1시간 이후부터? 그럼 그 한 시간 이내에는 엄마가 원하지 않으면 아기를 죽여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출생 후에 한 달까지는 제대로 된 인간으로서 기능하지 못하니 인간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죽여도 된다는 것일까? 그 시점은 도대체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낙태를 ‘범죄’의 영역에서 ‘합리적 선택’, 영역 즉 여성의 자기 결정권의 영역으로 옮긴 이후 엄마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명목으로 지극히 제한적으로만 허용되던 낙태가 이제는 영아 살해, 이미 태어나 버린 아이를 죽이는 것까지도 엄마의 선택과 결정의 범위로 확대되고 있다. 이것이 미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낙태가 죄가 된 것은 단순히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존엄한 존재라는 것이 인권의 기본 전제이며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낙태죄다.

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타인이 함부로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엄마일지라도 말이다.

우리 사회가 아기 한 명에 대한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합의를 져버리는 순간, 그 다음 희생자는 사회적 약자의 순서로 유아나 장애인의 생명의 가치가 의심받게 될 것이다.

오직 필요하거나, 유용하거나, 선택되는 생명만 존엄하고, 불필요하거나, 짐이 되거나, 약한 생명은 타인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제거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 타인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낙태를 합법화하는데 찬성하는 분들의 논리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의 침해, 여성이 당하는 부당한 현실적인 어려움, 그리고 실제로 낙태죄가 형법상 있어도 낙태를 근절할 수 없다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관점 등을 내 세웁니다.

어떤 도시에 교통신호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해서 거리에 있는 신호등 자체를 없애버리면 그 도시가 어떻게 될까? 더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해를 입게 될 것이다.

실효성이 없다고 법 자체를 없애버리면 그 법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 그 자체가 사라지고 우리 사회의 양심의 신호등이 꺼져버리게 된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더 큰 혼란과 아픔을 겪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낙태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해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굳이 낙태를 꼭 원한다기보다 부담해야 하는 현실적인 다양한 어려움들 때문에 낙태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어려움들은 낙태죄를 없애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여성인 엄마도 살리고, 아이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이웃과 사회가 고민하고 돕는 방식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님들은 이 사안을 현실적으로만 보지 말고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다음세대에 어떤 가치를 물려주어야 하며, 어떤 도덕적 유산을 남겨주어야 할지 깊이 생각해 주시기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 정소영 세인트폴고전인문학교 교장,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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