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N기획_탈북자는 말한다 ②] 금생리 청년 이광일의 죽음

0
157

[VON기획_탈북자는 말한다] 금생리 청년 이광일의 죽음

<<편집자 주-북한민주화위원회 회원들이 부정기적으로 쓰는 에세이를 최소한의 편집으로 VON에서도 싣습니다.>>

2000년 함경북도 회령시 금생리 노동단련대에서 구타로 억울하게 숨진 이광일(22살)을 추억해 본다.

함경북도 회령시 금생리에서 살고 있던 농장원 이광일은 마음이 어진 청년이었다. 집안 살림이 너무 어려워 풀죽으로 끼니를 때우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가난한 농민이었다.

더욱이 그는 정신질환을 앓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집에 혼자 있으면 종이 따위를 방안에 모아놓고 불을 지르곤 했다. 그래서 이광일은 농장일도 하고 어머니도 돌보느라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농장일을 제대로 못 할 때도 있었고 또 출근 못 하는 날도 있었다

당시 금생리 농장에는 청년동맹 비서가 새로 왔는데 그는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정치대학을 졸업했다고 했다. 그가 오면서 금생리에는 청년돌격대라는 것이 생겨났다. 금생리 사람들 속에서 일을 제대로 안 나오거나 말썽이 있는 사람들을 여기에 잡아넣고 노동을 시켰다.

하루 일과의 시작은 새벽 5시에 일어나 대열을 짓고 ‘사상개조’를 외치며 금생리를 한 바퀴 도는 것. 다음은 저녁 늦게까지 고된 육체노동에 혹사당해야 한다. 금생리의 모든 어려운 일은 돌격대에 맡겨졌다.

바로 이 돌격대에 이광일도 잡혀갔다. 그가 돌격대에 잡혀간 이유는 정신질환을 앓는 어머니 때문에 농장 일에 며칠 빠졌다는 것이었다.

당시 돌격대가 거처를 정하고 있은 곳은 금생농장 기계화작업반 선전실이었다. 날씨가 추워 제대로 잠도 잘 수 없었고 남녀를 한방에 넣어 숙식시키는 짐승살이가 바로 돌격대의 생활이었다.

아침이면 세수도 못하고 일과를 시작했다. 말이 청년돌격대이지 감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돌격대는 2000년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숱한 사람들을 고생시키고 해체됐다. 대신 결근이 많거나 ‘개조’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회령시 노동단련대에 보냈다.

노동단련대란 북한의 시(市)군(郡) 급 감옥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잔인한 인권유린이 공개적으로 자행되고 굶주림과 혹독한 육체적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며칠에 한번 씩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이었다. 그 노동단련대로 광일이도 끌려갔다. 이유는 결근을 며칠 했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이(里) 청년동맹 비서도 회령시 노동단련대의 상무로 배치 받아갔다. 단련대에 잡혀가 고된 육체적 노동에 시달리고 인간 이하의 멸시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살면서도 광일은 어머니 생각을 한시도 잊지 않았는데. 어느 날 그는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다녀올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단련대에서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도망쳐 갔다 올 생각을 했다. 그는 점심시간을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도망치다가 잡히고 말았다.

그는 뒷덜미를 잡혀 노동단련대로 끌려왔다. 단련대 상무(전 청년동맹 비서)라는 놈은 끌려오는 광일을 보며 이렇게 소리쳤다.

“야 저 새끼를 한 절반 죽여 버려. 다시는 도망치지 못하게.” 그 말이 떨어지게 바쁘게 상무에게 아첨을 피우며 살던 여러 명의 망나니가 달려들어 이광일을 때리기 시작했다.

광일의 몸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광일을 보며 쓴웃음을 짓던 상무는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어때? 도망가다 잡힌 감상이?…”

매를 너무 맞아 반정신을 잃은 광일은 아무 대답도 못했다. 그러자 상무는 또 애들에게 지시했다.

“야 이 새끼 정신이 아직 덜 든 것 같은데 다시는 도망가지 못하게 다리를 부러뜨려.”

광일은 다시 지독한 매를 맞으며 허우적거렸다. 나중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축 늘어진 광일의 머리카락을 잡아 쳐 들어보며 한 놈이 말했다.

“이 새끼 죽지 않았어?”

그때까지만 해도 광일이는 죽지 않았다. 그저 산송장이었다. 그런 광일을 보며 상무는 이렇게 말했다.

“야 이 새끼 다시 도망치겠어? 여기가 어디인데 감히 도망을 쳐? 야 반장, 이 새끼를 끌고 가서 빨리 일을 시작하라!”

그러나 광일은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 너덜너덜했다. 그러나 상무는 이렇게 소리쳤다.

“인마 한쪽 다리는 성하니까 한쪽 다리만 끌고 다니면서 일해라. 여기는 네가 죽어도 가슴 아파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깟 다리하나 없는것 가지고 일을 못한다는 게 말이 돼? 야 반장 이 새끼 데리고 가서 일을 시켜.”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부러진 다리를 끌고 일을 했다면. 그러나 광일이는 부러진 다리를 끌고 일을 해야 했다. 그 고통은 오죽했으랴.

그날 밤 광일은 통증으로 한 잠도 못 잤다. 다음날도 그는 그저 침상에 누워 고통 속에 몸부림쳐야 했다. 부러진 다리는 팅팅 붓고 나중에 뼈 속으로 염증이 생겼다.
그는 그렇게 나흘을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가 죽었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 광일은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그를 흔들어 보았지만 그는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다급한 사람들은 상무를 비롯한 단련대 관리들에게 알렸다.다급한 연락을 받고 나타난 상무는 숨진 광일의 시체를 발로 툭 차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새끼 썩어졌으니 빨리 가마니에 싸서 내다 묻어버려라.”

광일은 그렇게 죽었다. 상무의 지시대로 애들은 상무를 가마니에 싸서 뒷산에 묻었다. 가난에 쪼들이며 정신질환을 앓는 어머니를 돌보느라 출근을 제대로 못 한 죄로 단련대에 끌려온 광일이. 그것도 죄라고. 그것이 과연 죄란 말인가.

한없이 어진 광일이. 어린 나이에 희망도 잃고 가난에 시달리며 어머니를 돌보느라 지지리 눌려 살던 그는 그렇게 죽었다. 그렇게 죽었지만 묘도 만들어주지 않았다.

북한은 단련대나 감옥에 가서 죽으면 가족들에게 연락도 안 해 준다. 이유는 죄를 지었으면 인간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강아지도 죽으면 애석해한다는데 개만도 못한 것이 바로 북한 사람들의 인권이다.

사람들의 생활과 어려움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약간만 거슬리면 죄를 뒤집어씌우고 인간의 목숨을 개 목숨처럼 여기는 김정일 독재집단의 더러운 무리는 하루빨리 지구에서 영원히 멸살시켜야 한다.

광일의 명복을 빌면서.

한동네에서 살던 윤옥.

/ 윤옥(가명)

댓글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