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태국인 납치 사례로 본 북한의 외국인납치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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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N현장]180622 태국인 납치 사례로 본 북한의 외국인납치 전모! – 토모히루 에비하라

지난 6월 8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주최로 열린 [북한정권의 불법납북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13개국 국제공조 대처방안 발표회] 현장

토모하루 에비하라 치앙마이 납북자 구출협의회 대표의 [북한정부의 외국인납치관련 현황 및 관련 도전과제] 발제 내용입니다.

발제 전문
에비하라 토모하루 입니다.
저는 일본인이지만 태국에서 20년간 살고 있습니다.
저는 태국대에서 가르치고 있으면서, 13년 전부터 북한 납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태국의 납북 피해 상황과 경위에 대해서 말씀해드리겠습니다.
(북한 정부의 태국인 납북)납치피해자 13개국 중에 한 곳이 바로 태국입니다.
이 13개국 중에서 정부차원에서 북한의 납치문제를 호소하고 있는 곳은 3개국밖에 없습니다.
한국 정부, 일본 정부, 그리고 태국 정부입니다.
이 납치 문제 해결에 대해 태국이 정부 차원에서 호소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태국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북한에 의해 납치되었다고 명확하게 밝혀진 태국인 피해자는 한 분입니다.
이 분의 성함은 아노차 판초이고 여성입니다.
오늘 이 아노차 피해자분의 가족분도 함께 이자리에 참석해주셨구요. 다음 세션에서 발표를 해 주시겠습니다.
제가 지금 아노차 씨의 사진을 가져왔는데요. 지금 잠시 보시죠.
아노차씨는 1978년 마카오에서 납치되셨습니다.
1978년이라는 것은 좀전에 니시오카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북한 정부가 공작원을 현지화하던 그 시기입니다.
이분이 납치되신 것은 1978년이었지만 납치가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2005년이었습니다.
2005년까지는 이 아노차씨가 어떻게 사라지게 되셨는지에 대한 단서조차 없어서, 가족분들이 매우 고민을 많이 하셨습니다.
아노차씨의 납북이 명확하게 판명되었던 것은 전 미군이었던 찰스 젠킨스씨가 일본으로 이주를 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찰스 젠킨스씨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도 좀 알려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분은 1965년에 한국에서 38선을 넘어 탈영하여 북한으로 넘어가셨습니다.
그 이후로 14년간 계속 북한에 계시다가 2005년에 일본으로 넘어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의 부인이셨던 소가 히토미씨가 일본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일본정부와 북한정부 사이에서 다섯명의 납치 피해자를 귀환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분이 이 소가 히토미씨였습니다.
그래서 2005년에 소가 히토미씨가 일본으로 귀환을 하면서, 남편이신 찰스 젠킨스씨도 같이 귀환을 하게 되었습니다.
찰스 젠킨스씨는 2005년 이후부터 북한에 있는 외국인 납북피해자들에 대한 여러 증언을 하셨습니다.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외국인 납치 피해자 중에 태국인 분이 있다는 것을 증언하셨는데요.
이야기로만 증언을 한 것이 아니라 사진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 사진을 태국인 피해자의 증거로서 제시를 하셨습니다.
작아서 잘 안 보이시겠지만 제일 왼쪽이 찰스 젠킨스 씨 입니다.
또 가운데가 일본인 납치 피해자 소가 히토미씨입니다.
그리고 왼쪽에 계신 분이 태국인 피해자 아노차 판초이씨입니다.
이 사진은 1984년에 원산에서 찍은 것입니다.
이렇게 명확한 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2005년에 태국인 피해자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밝혀졌습니다
좀 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외의 피해자들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을 드리겠습니다.
신분과 소재가 분명하게 밝혀지신 분이 이 아노차 판초이씨입니다.
그리고 이건 조금 이상한 경우인데요. 1980년에 태국인 여성 8명이 일본의 직장에 취업을 시켜주겠다는 말을 듣고 속아서 북한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공작원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도쿄에서 급여가 높은 좋은 일이 있다고 (그들을) 속여서 (북한으로) 데리고 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행기에 탈 때 쯤 가는 곳이 도쿄가 아니라 평양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들이 해야 하는 일은 평양의 외국인 식당의 웨이트리스였습니다.
그리고 이 여성분들이 계속 돌아가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하셔서 1981년, 그 다음 해에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경우인데요. 이것이 보통의 납치피해와 다른 것은 보통 (북한에) 납치된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가거나 하는 것이 자유롭지 않은데, 이들이 웨이트리스라서 외국인들과 만나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자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경우가 더 있습니다.
2006년에 북한 공작원이 인천공항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이 남성은 태국인으로 가장을 해서 태국인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남성의 이름은 마놋 시린이었습니다.
이 마놋 시린이라는 사람이 실제로 태국에 있는 사람인 지는 명확하지 않습 니다.
일본인 납치범죄(?)를 생각해보면 일본인 운전면허증이나 신분증을 도용해서 일본에 왔던 공작원들이 있었습니다.
이 남성도 그런 공작원일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까지 마놋 시린이라는 사람이 태국에 실존하는 인물인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명확하진 않습니다.
태국에서 밝혀진 정보를 통하면 이 3가지 건이 있습니다.
아노차 판초이 씨의 사건으로 다시 돌아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005년의 이분의 납치가 판명되고 나서 태국 정부는 북한에 이 문제를 거론하였습니다.
태국 정부에서는 이 아노차 판초이씨를 찾기 위해서 태국과 북한이 같이 이 분을 찾을 수 있는 위원회를 만들자고 요청하였습니다.
이 제안은 2006년에 아세안포럼에서 태국 외무장관이 북한 외무장관에게 제안한 것입니다.
그런데 2006년에 태국에서 군사 쿠테타가 일어나서 탁신 총리가 실각을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약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태국 정부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이 태국 정부의 불안정화 때문에 조사위원회의 대한 대답을 계속 피하고 있습니다.
2005년에서 2006년에 걸쳐서 태국은 북한에게 아노차 판초이라는 사람이 북한에 있는지 확인해 보았지만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정보를 제공했던 찰스 젠킨스에 대해서는 거짓말쟁이이고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2018년 현재까지도 태국 정부가 북한 정부에 대한 협상을 계속 하고 있지만 이렇다할 결과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태국 정부가 지금까지 협상을 해 왔던 방법은 태국과 북한의 양자간의 대화로 해결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저희의 생각은 태국 정부와 북한 정부의 양자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올해 들어 남북간의 굉장히 큰 변화가 있었는데요.
그래서 또 일본 한국 미국이 정부레벨에서 납치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연결되어야 할 필요성이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4월에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대통령이 회담을 나눴고 거기서 일본의 납치피해 문제가 나왔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그것을 언급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 워싱턴에서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를 통해서 트럼프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납치 피해문제를 거론하겠다고 언급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일본과 한국의 최고 지도자 레벨에서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 이런 연계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한국도 이러한 국제적인 연계에 함께 포함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10년간 태국이 이 문제에 대해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는 큰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길어졌는데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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