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북한의 국제납치 전모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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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N현장]180622 북한의 국제납치 전모를 밝힌다! – 니시오카 츠또무 일본 구출회 회장

지난 6월 8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주최로 열린 [북한정권의 불법납북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13개국 국제공조 대처방안 발표회] 현장

니시오카 츠또무 피랍일본인구출회 회장의 [국제적납치 전모와 일본의 납치문제 현황] 발제 내용입니다.

발제 전문
반갑습니다.
이미일 이사장님 그리고 전시납북자가족회 분들과 같이 밟아간지 거의 20년 가까이 되 갑니다.
그래도 아직 해결되지 못했다는 것이 분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납북자 문제 제기를) 안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안하면, 100% 할 수 있는 말이 안하면 희망이 없다. 하면 희망이 생긴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일본인이 많이 납치된 지가 40년이 돼서, 일본가족회 회장 료칸다씨는 지금 병원에서 누워 있습니다. 이제는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없게 됐습니다. 그래도 (납북된) 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 가족회가 20년동안 하지 않았으면, 납치문제가 국제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같이 왔고 같이 끝까지 가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한테 주어진 주제가 국제적 납치의 전모와 일본의 납치문제 현황입니다.
이 부분은 13개국의 납치문제가 주제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아마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제일 많이 조사를 했기 때문에, 그 부분부터 먼저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납치시기구분이 있습니다.
아마 4개의 시기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한국전쟁 중 납치입니다.
이미일 이사장님 하시는 연구원에서 깊이 연구를 하셨고, 또 전쟁납북자기념관까지 생겼습니다.
국가기관에서 조사를 했고 보고서까지 냈습니다.
아직까지 일본에선 연구원이 없습니다. 그리고 국가보고서도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한국이 앞서 있습니다.

약 10만명의 민간인이 전쟁 중에 납치되었습니다. 지금 이영조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그 직후에 가족회가 생겼고, 이미일 이사장님의 어머니 세대가 운동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때 박정희 대통령도 서명하셨고 UN에다가도 호소를 했는데 국제사회가 그 문제를 무시했습니다.
지금 미국은 당사자지만은, 전쟁범죄를 무시해서 쉽사리 휴전을 해버렸습니다.
그 결과 북한 사람들은 납치해도 괜찮다. 납치해도 해가 오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용서한다. 할 수 있다.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납치는 테러입니다.
테러하고 싸우지 않으면 또 다른 테러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경험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휴전 후 한국 사회에서 주로 어부들이 납치되었습니다.
약 3700명의 어부들이 어선이 나포되서 납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외적으로 민간항공기가 하이잭킹되서 납치된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그 3700명 중에서 약 90%는 한달 정도 북한 내부를 안내받고 생산시설도 보고 평양시도 보고 귀가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경제수준이 북한이 위였습니다.
그때 보고 온 분들이 한국사회에서도 가난한 계층이었었습니다. 그래서 앞서있는 북한사회를 보여주고, 공산주의가 낫다. 공산주의 경영를 해야겠다는 인상을 주고 선전원으로 보냈습니다.
근데 약 900명 정도는 그냥 월북했습니다.
이 중에서 몇 사람들은 간첩으로 쓰려고 간첩훈련까지 시켰습니다.
그래서 간첩훈련을 시키니까 한국사회에서는 간첩훈련을 납북자 가족을 도울수가 있다고 해서 연좌제까지 적용해서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인권침해를 받았다 라는 것이 사실이예요.
그런데 그때까지는 김일성 시대입니다. 그런데 74년에 김정일이란 후계자가 됩니다. 후계자가 된 다음에 김정일이가 인민군을 전부 다 장악한 다음에 공작기관을 장악했습니다.
공작기관에 조직의 지도요원들을 보내서 과거의 대남공작에 대해서 상호비방했습니다. 그 결과 과거의 대남공작의 성과는 제로다. 아무것도 없다. 새롭게 해야 된다. 이제는 김정일이가 직접 지도한다. 이라고 공작 간부들을 비방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1971년도에 김정일이가 새로운 사업방침을 내렸어요. 그 중에 하나가 핵심 간부를 공작원으로 해야한다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남쪽에 연고가 있는 사람을 공작원으로 했다. 그래서 실패했다. 그래서 그리고 전쟁중 납치된 분들 중에서도 몇 사람을 공작원으로 쓰임을 받았던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쓰지 말아라. 북한에서의 엘리트를 선발해서 장기간 교육을 시켜야 한다. 대학을 만들자.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이라는 공작원 대학을 만들어서 처음엔 4년제, 나중에는 6년제 교육을 했습니다.

그 공작원대학의 과목 중 하나가 현지화였습니다. 일본에 침투하면은 일본인으로 위장해야 하고, 중국에 침투하면 중국인으로 위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만 하더라도 남북한 문화 차이, 경제적 차이가 생겼으니까 서울에 공작원이 오면 서울역에 와서 서울역이 어딥니까 물어보다가 잡혔다는 우스개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남화, 한국인화 교육도 해야 한다는 개념이 현지화입니다. 현지화 교육을 하기 위해서 교관을 데려오라고 76년에 김정일이가 새로운 지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77년, 78년에 세계 각지에서 납치를 행했습니다. 일본에서도 일본정부에서는 17명이 납치범죄를 당했다고 인정하고 있는데 그 중 13명은 77년, 78년에 납치되었습니다.
KAL기 폭파범인 김현희씨의 일본인현지화 교관이었던 다구치 야에코씨도 그 때 납치되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현지화 교육의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요코다 메구미씨, 13세살 때 납치되었던 그녀도 김현희씨의 동료공작원 김숙희씨의 일본인화 교육의 교관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카오에서 납치된 공영앵이라는 분은 김현희의 친구이고 교관이었습니다. 김현희씨는 일본인화 교육과 중국인화 교육을 모두 받았습니다.

레바논에서 납치된 사람들이 북한에서 훈련을 받았을 때 프랑스사람을 봤다, 이탈리아 사람을 봤다, 네덜란드 사람을 봤다 등 증언을 하고 있고, 한국 여배우 최은희씨도 외국인을 많이 봤다는 증언을 하고 있어서 종합해보면 70년대 후반에 한국 일본을 포함해서 12개 나라에서 납치가 있었고, 요쿠다 메구미씨의 전 남편 김영남씨도 78년 한국 해변가에서 캠프를 하다가 납치가 되었죠.
그 사람도 한국인화 교육 교관이었어요.

김정일정치군사대학교 캠퍼스 내에 지하시설이 있습니다. 이남화교육관이라는 지하시설이 있는데 거기에는 서울거리가 그대로 복원되어 있습니다.
그 서울거리에 가라오케 집이 3개가 있답니다. 제 친구 중에 한사람이 공작원 출신 탈북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일본에 와서 가라오케에서 한국 노래를 잘 불러요.
한국에 와서 가라오케를 많이 다녔나 했더니 그게 아니라 김정일정치군사대학 재학시절에 시험과목 중에 한국노래를 10곡 이상 불러야지 진급할 수 있었답니다. 그만큼 그 사람은 북한 사투리가 없어요. 완전 서 울말 쓰고, 서울 뒷골목 지리도 잘 알아요. 그 정도 집요하게 한국인화 교육을 시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젊은 한국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5명의 고등학생도 납치되었구요. 현지화 교관을 위한 납치가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까지 진행되었습니다.
그 시기가 세번째 시기입니다.

네 번째 시기는 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입니다.
90년대 후반부터 북한은 기아상태였죠. 300만이 아사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배급을 안 줬기 때문이죠. 핵개발에는 돈을 썼지만 인민들 생활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에 충성심 있는 사람들부터 먼저 죽었습니다.
지금도 기본적으로 배급을 안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죽지 않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장사를 해서 먹고 살고 있으니까 이제는 당에서 생활보장을 안해준다. 생활은 알아서 해야 한다.
그래서 탈북자가 많이 나왔을 때 탈북자들을 돕던 외국인이 납치됐고, 한국인 선교사가 납치되었습니다. 2004년도에는 미국인 유학생이 탈북자를 돕고 있었다는 혐의때문에 납치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13개 국가입니다. 그 중에서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납치문제해결을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정부의 전략은 이것입니다. 납치를 이유로 제재를 합니다.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지원을 하지 않습니다. 제재와 지원에 납치문제를 집어넣는 것입니다.
그것이 힌트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호소를 하지만 호소만 해서 들어줄 북한정부가 아닙니다.
북한정부가 받고 싶은 것에 납치문제를 조건으로 건다. 아니면 (북한정부가) 아파하는 부분에 대해서 납치문제를 연결시킨다. 납치문제를 이유로 제재를 해야하고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지원은 안된다. 이런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북한에서는 종전을 원하고, 평화협정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전쟁범죄인 납치, 평시 테러인 납치를 해결되지 않는 한 종전은 있을 수가 없다. 평화협정은 있을 수가 없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첫번째 책임은 한국정부에 있습니다.
평화조약을 맺고 싶어 하는데 조약을 맺으려면 의회의 비준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 야당들도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희망은 미국의 상원입니다. 미국 상원에는 조약 비준권이 있습니다. 미국 상원에는 인권문제에 관심이 있는 의원들이 많아요.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너무 앞서 있는 것 같아서 걱정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조약을 맺고자 하면 미 상원이 비준을 해야 합니다.
가까운 장래에 미국에 가서, 한국 국회의원들과 같이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상원에 호소해야 합니다.
전쟁범죄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전시 납치가 전쟁범죄다. 평화협정은 전쟁범죄를 해결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런 목소리를 미 의회 내에서 내어야 한다는 운동을 하는 것이 북한쪽에서 평화조약을 원하고 있으니까 효과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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